목사님이 쓴 글을 모았습니다
한성훈 목사가 그때그때 적어 둔 글입니다.
지금까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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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감사한 하루 관리자 23.05.15
감사한 하루
어제는 참 감사한 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 설립 이후에 처음으로 직분자를 선출한 날이기에 기뻤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누가 안수집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들 신앙과 인품을 갖춘 분들이라 이런 후보군(?)을 갖춘 것이 자랑스럽고, 내심 선출 정원인 2명을 채우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는데 2명을 선출한 것도 다행스러웠습니다. 이제 6개월의 교육과정을 거쳐 11월쯤 임직식을 가질 것입니다. 주께서 세우신 직분자들을 통해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또 하나의 감사한 일은 최종인 형제가 <가야 연마>라는 가게를 연 것이고, 우리 교우들이 함께 개업예배에 참석해서 축하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심 개업예배 간다고 했는데 같이 갈 교인들이 별로 없으면 어떡하나 염려도 되었지만 여러 가정들이 참여하여 비좁은 가게지만 가득 채워주셔서 다행스러웠습니다. 함께 참여해주신 남궁택, 유지원, 신종수 성도 가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 나온지 얼마 되지 않는 종인 형제를 향해 성경이 말하는 환대의 정신을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한 일은 스승의 날이라고 저와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멋진 케이크를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가르치고 영적으로 먹이는 일은 당연한 사명이지만 한 번씩 교인들의 격려를 받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감동적인 이벤트를 열어주신 박소정 성도와 같은 마음으로 축복해 주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에 방문했던 한 성도가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가득해서 놀랐다고 너무 활력이 넘쳐서 좋아보였다고 합니다. 미래가 있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사로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9 어째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관리자 22.08.26
어째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는 가족이라는 제도는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기반으로 존속해 온 제도이다. 지금껏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이라고 인정할 만한 부류를 보자면 그 기초에는 자녀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부모가 항상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관심하거나 사랑을 주지 않는데 다른 요소들로 인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부모란 존재는 꼭 생물학적으로 나를 낳아준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양부모나 조부모가 된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인류는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 바탕이 된 가족 제도를 지금껏 이어오게 된 것일까? 이런 가족 제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령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어린 자녀를 보살펴주다가 성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남처럼 혹은 경쟁 관계로 변한다든지, 자녀가 어느 정도 자라면 그 부모를 죽이고 생존 수단을 차지한다든지,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자녀는 부모가 자녀를 죽여버리고 우월한 인자를 가진 자녀만 살린다든지 하는 그런 가족 제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부모라는 사람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어줄 것처럼 무한정 헌신하는 관계로 이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대체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갖추고 살아간다. 이와 반대로 부모의 사랑과 헌신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자녀는 자라서도 어딘가 불안정하고 결핍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면에서 나는 진화론을 믿기가 매우 어렵다. 우연히 진화가 되었는데 인간 사회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이렇듯 무한 사랑과 헌신으로 결합되었다고? 생물학적으로 진화되었을 뿐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 생겨났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진화론이 우월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개체가 점점 발전되어 간다는 것인데, 진화론의 체계 안에서는 무한경쟁과 선택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진화론에서 사랑과 헌신이라는 가치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할 때 가족 제도는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사랑과 헌신이라는 가치는 바로 삼위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은 가족 제도를 만드시기 전에 이미 삼위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한몸(一體)을 이루고 계셨다. 그 하나님은 가족 제도를 창설하실 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삼위의 관계처럼 사랑과 헌신으로 설정하셨는데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하여서 완벽한 가족 관계는 깨어졌으나 어쨌든 사랑과 헌신이라는 틀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무한히 사랑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한다. 죄로 오염된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상 사랑과 헌신이란 가치가 발현될 수가 없는데, 인류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인해 특별히 가족 관계에서는 사랑과 헌신으로 서로를 붙들어 매두셨다. 그래서 부모라면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사랑과 헌신을 쏟게 된다. 이것을 통해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과 헌신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우리가 존재하고 있지만 죄로 둔감해진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에는 가족 제도의 원형이신 삼위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헌신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깨닫게되어 절로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 한 끼 금식 관리자 22.04.14
한 끼 금식
고난주간을 보내는 가운데 어제 저희 가정에서는 저녁 시간을 금식하였습니다. 월요일에 이미 아이들에게 ‘수요일 저녁은 금식이다’라고 했지만 막상 금식을 한다고 하니 ‘정말 아무 것도 못 먹냐’며 불만을 나타내더군요. 저는 ‘지금껏 먹고 싶은데 밥을 못 먹은 적이 있느냐. 한 번도 금식해 본 적이 없지 않느냐. 북한을 비롯해서 다른 나라에는 늘 굶주리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험해 보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지 감사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기껏해야 일 년에 천 끼 넘게 먹는 밥 중에 단 한 번의 금식이지만 배고픔을 참는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임을 느끼며, 배고픔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어떤 경우는 밥 생각이 없어서 한 끼를 건너뛰는 일도 있지만 금식을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면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금식하며 저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되내어 보기도 합니다. 고작 한끼 금식인데도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할 때 순서대로 읽어나가던 성경읽기를 멈추고 예수님의 고난에 해당하는 성경을 돌아가면서 한 장 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잠시 설명한 뒤에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짧은 영상을 함께 보고 고난 속에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받으셨다고 우리도 그 고난을 답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주님의 당한 고난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니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난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자들, 고난에 빠진 믿음의 형제들을 위하여 함께 고난받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너무나 배가 불렀고,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고, 고난이 별로 없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고난을 체험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고난주간에 문화금식운동을 하기도 하고,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금식은 원초적인 육신의 욕망인 식욕을 절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내버려두었던 이런 욕망을 한 번씩 자극하는 것은 신자로서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지 않던 새벽기도를 특별새벽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전반기, 하반기에 한 번씩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같이 식욕이나 수면욕을 통제해 보려는 시도는 우리 스스로를 욕망에 길들여진 존재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언제든지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금식은 언제든 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해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자녀가 너무 어리면 해 보기가 어려울 테지만 초등학생 정도라면 금식의 취지도 웬만큼 이해하리라 보고 온 가족이 한 끼 정도는 금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이 아니라면 혼자라도 자기 욕망을 다스려보고 고난에 있는 자들을 생각해 보는 의미로 해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로 갔습니다. 신앙과 관련한 부분에서 적절한 자극은 아이들의 신앙에도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7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관리자 21.11.30
오늘 큐티 본문은 요셉과 동침을 요구한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 계략이 실패하자 요셉을 모함하여 감옥에 집어 넣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이냐, 인간적인 욕망과 출세냐를 놓고 선택해야 할 순간에 전자를 선택합니다.
분명히 그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구한 사안을 들어주지 않아서 감수해야 할 손해가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을 했을 것입니다. 당장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적어도 보디발의 집에서 승승장구 할 수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망이 보이지 않는, 어쩌면 자기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는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어려운 선택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가치관, 신앙, 철학이 담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을 거부한 요셉은 자신의 주인보다 인간적인 정욕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의 선택을 통해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해설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띕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을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많은 지체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직장 가까이로 거주지를 마련합니다. 그 선택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맺어왔던 많은 관계들이 약화되고 단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관계를 버리고 돈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단락을 읽으며 저는 한때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평신도로 SFC간사를 2년 마치면서 사역에 대한 회의가 들어 평소에 꿈꾸던 방송 일을 알아보던 중에 CBS방송 AD(Assistant Director)를 채용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을 해서 합격을 했습니다.
방송국은 서울 목동에 있어서 당시 수원에 살던 저는 매일 왕복 4시간을 출,퇴근에 할애해야 했습니다. 때마침 결혼을 하면서 당시 교회와 SFC운동원, 동문 등 교제권이 거의 수원에 있었던 것을 다 뒤로 하고 저는 자연스레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송 일은 재미도 있었지만 스트레스도 컸습니다. 불규칙적인 업무에다가 방송 일이라는 것이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일은 그렇다치더라도 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제 주변에 터 놓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수원에 살 때는 SFC와 연결된 사람들이 많아서 이래저래 신앙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고 할 수 있었는데 서울에 사니까 영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침체기를 맞이했지만 어디서 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그룹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영적으로 케어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경험이 공동체 모임을 만들고, 살림교회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큐티 해설처럼 많은 청년들이 그저 직장 잡히는 곳 따라서 이사를 하고 정착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간 쌓아놓았던 영적인 인맥이나 자신을 영적으로 돌보아 주었던 교회나 공동체를 쉽게 정리해 버립니다.
즉 직장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니까 나머지 것들은 그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디 한 번 타지에서 살아보십시오. 또다시 영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나고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러니까 직장이나 학교 등의 사유로 거주지를 먼 곳으로 옮긴 사람들이 전에는 신앙생활을 잘 했는데 옮기고 나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직장 따라서 거주지도 옮기고 교회도 옮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공동체를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면 교회를 중심으로 자기 직장을 구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바로 그 선택이 진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2014. 3. 27.
6 메켄지 선교사 자살 사건 어떻게 볼 것인가? 관리자 21.11.30
작년 이맘 때 쯤 교회 청년들과 함께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백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관리를 맡은 뒤 시설이 많이 개량되었고, 한층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가 좋아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묘지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자원봉사 하시는 분이 교육관 같은 곳에서 초기 한국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을 파워포인트 영상과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을 보는 가운데 메켄지라는 캐나다 선교사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본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주 젊고 패기 넘치던 한 캐나다 선교사가 홀홀단신으로 입국하여 불과 2년 남짓 선교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고생하던 중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선교활동이 어렵고 몸이 안 좋았기로서니 선교사가 현지에서 자살을 해?’ 그 순간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한한 선교사 중에 자살한 이도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이번 학기 ‘현대목회와 정신질환’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파트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여러 조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그 메켄지 선교사가 생각이 났다. 양화진에서의 설명은 너무나 짧아서 그가 왜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말 보고서를 쓸 때 메켄지 선교사의 자살을 심층 분석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자살에 대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있어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작년에 있었던 전도사 아내의 투신 자살 사건 이야기를 접하면서 ‘과연 신자가 자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보며 ‘물론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너무 미화되고 있지는 않는가, 자살에 대한 관대한 태도 때문에 모방하는 사례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메켄지 선교사를 중심하여 기독교인은 자살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 지 연구해 보기로 하겠다.
Ⅱ. 메켄지 선교사의 삶과 죽음
윌리엄 메켄지(William J. McKenzie, 1861~1895)는 캐나다장로교회 출신으로 일찍부터 선교에 관심을 보여 핼리팩스신학교를 다니며 래브라도어 섬에 선교활동을 다녀오기도 하였고, 선교사로 일할 때 의료기술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하여 의료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래브라도어에서 선교를 하던 중 조선에 관한 책을 읽고 조선 선교를 꿈꾸는데 직접 자기 돈 100달러를 캐나다장로교회 본부에 보내면서 자기를 조선 선교사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선교본부가 난색을 표하자 메켄지는 직접 후원자를 모집하여 1893년 12월에 개인 자격으로 조선 선교사로 들어오게 된다.
메켄지는 다른 선교사들과의 조율을 거쳐 훗날 조선 장로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는 황해도 소래(松川)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이 될 서경조가 살던 지역이기도 했다. 그가 소래에서 머문 것은 약 10개월로 선교 활동기간은 무척 짧았지만 그의 업적은 기간에 비해 무척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활발한 전도활동으로 그가 있을 동안 교인 수가 15명에서 100여 명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교인들과 더불어 예배당을 건축했고, 문서 사역과 의료 사역으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접촉점을 제공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되었을 때 번하이셀이 그곳을 방문하고 쓴 일기에 소래에 60가구 중 2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주민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선교활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선교하였고, 조선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지대하였기 때문이다. 메켄지는 자기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동학군들을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해 주어서 나중에 동학군들이 자신들의 무례한 행동을 사과하였고 나중에 동학교도들이 교회에 나오기까지 하였다. 조선인과의 동화를 가장 효과적인 선교방법으로 보았던 메켄지는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으며, 조선의 초가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조선적인 삶의 양식을 너무 급격히 받아들이다보니 육신은 날로 쇠약해져서 한국에 온 지 2년이 채 못된 1895년 6월,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소래교회 출신 서경조가 메켄지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그와 같은 목사를 파송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에 보냈고, 여기에 감동을 받은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는 공식적으로 조선선교를 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1898년에 캐나다 장로교에서 파송을 받은 맥래(Duncan M. Macrae)와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부부, 푸트(William Rufus Foote) 부부가 조선에 입국하게 된다. 메켄지는 캐나다 장로교에 있어서 조선 선교의 아버지이자 선구자가 되었던 셈이다.
사실 메켄지 선교사의 일대기를 조사하면서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분명히 양화진에서 설명을 들을 때에는 메켄지 선교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찾아본 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찾아보았고 장신대 김인수 교수가 쓴 논문을 통하여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메켄지 선교사의 자살 사건을 기록하지 않은 글들은 그의 감동적인 생애에 비해 마지막이 그리 덕스럽지 못한 내용이라 굳이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전기를 보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이 환경적 요인이 컸음을 말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기후와 열, 무리한 햇빛에의 노출과 음식물의 결핍 등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메켄지의 자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평양에서 선교하면서 메켄지의 죽음을 조사했던 웰스(James H. Wells)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로서의 나의 첫 책임은 메켄지씨의 자살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독과 격리와 도피생활과 조선 음식 등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외따로 솔내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가 제 손으로 제 몸을 쏘았을 때 고열로 인하여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그는 인간을 떠나 혼자 산다는 그릇된 이론의 희생이 된 증거가 명백하다.
백락준 박사 또한 메켄지의 죽음에 대하여 “무더운 여름철에 일사병과 신열(身熱)로 인하여 정신착란을 일으켜 필경은 1895년 7월 23일 권총으로 자살하였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권총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Ⅲ. 그의 죽음에 대한 목회, 신학적 의미
자살로 일생을 마감한 메켄지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의 마지막 행동이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무시한 불신앙적인 처사였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다 무위로 돌려야 하는가? 아니면, 백락준 박사의 견해대로 정신착란에서 비롯된 의도하지 않은 자살이었기에 그의 죽음을 일반적인 자살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되는가? 이런 판단을 위해서는 먼저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정리하는게 필요하다.
1. 자살이란 무엇인가?
자살은 자유로운 결단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 또는 자기 목숨에 죽음의 위협이 찾아왔을 때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고 그 위험을 맞이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이 범주에 의하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삶과 죽음의 선택의 기로에서 죽음을 택하는 순교자들도 자살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든 자살을 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없다. 그 동기와 목적에 따라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정당화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은 정당화 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이웃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숭고하게 여긴다(요 15:13).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버릴 때는 인간의 생명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일 때에 정당성이 있는 것이므로 단지 가정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해 자살한다거나 정치적 이념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면 우울증과 같은 극심한 정신적 혼란이나 치매 환자처럼 자유로운 결단이 불가능한 정신질환의 상태에서 자살하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경우는 윤리적인 문제로 보기보다는 질병의 문제 곧 정신과적인 치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2. 메켄지 선교사가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
위의 자살에 대한 범주를 놓고 볼 때 메켄지 선교사의 죽음은 자살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행위자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신대 김인수 교수도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의 최후는 스스로 자기 생명을 권총으로 쏘아 자살을 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자살이라고 말하기에는 맞지 않은 상황임을 명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정신착란을 일으킨 후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착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단지 일사병이나 신열이 났다고 그것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메켄지 선교사가 남긴 일기를 보면 그가 죽기 두 달여 전부터 몸이 아프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일기 중 마지막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 6월 1일
오늘 아침 몇 사람이 방문했다. 양산을 쓰지 않고 세발자국만 걸어도 나는 일사병 증세를 느꼈다.
* 6월 18일
피곤한 몸이 아팠다. 오전에 몸이 불편하여 키니네 15알을 복용했다. 다소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기력이 없다.
* 6월 23일
지난 이틀 동안 거의 걷지를 못했다. 매일 한 두 차례 구토를 했다. 배편으로 서울로 가기로 결심을 했다. 내일 누군가 한 사람이 여기에 오도록 서울에 전보를 보냈다. 시간이 갈수록 수면을 취할 수가 없다. 오늘은 방문자를 사절하고 문밖에 나가지도 말아야겠다. 몸이 너무 쇠약해졌다...(후략)
이 후 그의 일기는 필체가 흐려져서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그는 죽음 직전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기에 “나의 마음은 더 이상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잘 보살펴 주시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글을 쓰는 것도 몹시 힘이 듭니다” 라고 쓰고 있다.
그는 자살을 결행하기 전 이미 일사병과 신열 같은 육신의 질병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한 고통은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을 유발하게 되었고, 수면 장애나 섭식 장애 등을 동반하였다. 이는 DSM-Ⅳ에서 말하는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 포함되는 요소들이다. 자신의 심각한 질병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한 생활사건 중 하나이다. 게다가 그는 홀홀단신으로 선교지에 들어와 고독하게 사역을 해왔다. 평소에는 그런 고독감을 잘 이겨냈을지 몰라도 병마와 싸울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외로움과 공허함이 무척 컸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 요소인 사회적 지지 결여라 볼 수 있는데 사회적 지지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생활사건을 차단시켜 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게 된다. 만일 그가 결혼을 해서 부인과 같이 입국했더라면 그런 불행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의 자살은 두 달여간의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따른 스트레스와 그와 동반되는 수면 장애, 섭식 장애로 우울증이 찾아왔기 때문인데 이런 상태에서 자신을 간호하고 위로해 줄 사회적 지지 기반마저 없음으로 더욱 상태가 심각해져서 주체적인 판단 능력 상실에 따른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3. 신자의 자살, 어떻게 보아야 하나?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해마다 상승을 거듭해서 현재 OECD 국가중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살률의 증가는 기독교인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이미 지난 몇 해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에는 꼬리표처럼 기독교인이었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더 이상 자살을 불신자들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대목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중죄로 여기고 금해왔다. 어거스틴은 자살은 육체를 더럽히는 행동이 아니라 영혼을 더럽히는 행동으로 여기고 철저히 거부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자살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으로 도덕적인 잘못으로 규정하였다. 더구나 자살은 남겨진 가족과 이웃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악하고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으며 모든 용서의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살을 비윤리적 행위로 일관되게 비판했지만 자살과 구원의 문제를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자살에 대한 금지입장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로마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고수한 가치이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은 교회의 묘지에 묻히지 못하게 했는데,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묘지에서 묘지 경계선 밖에 안장한 묘는 모두 자살한 사람의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자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성경은 자살이라는 특정한 행위에 대하여 직접적인 판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흔히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살과 연관된 구절들을 통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성경에서 자살을 언급하는 본문은 삼손과 사울, 아히도벨과 시므리, 가룟유다 이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 사례이다. 이들의 죽음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로서 징벌 또는 심판의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왜 성경에서 자살에 대하여 명시적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이미 십계명 중 제6계명에 해당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이 되었든지 남이 되었든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저촉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에 손상을 가하는 중대한 범죄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자살에 대하여 정죄해야만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의도성과 계획성을 가진 자살의 경우와는 달리 기독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살의 경우는 대체로 우울증과 같은 일종의 정신질환 상태에서 결행되는 경우가 많고, 정신질환 상태에서의 자살은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보다 질병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켄지 선교사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살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어떤 과정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또한 대다수의 자살자들은 어떤 동기와 과정을 통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알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추론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성경 교훈에 기초한 일반적인 원칙 즉 “자살은 큰 범죄이며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임의로 탈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피하려는 태도는 구원의 은혜의 상태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살에 대한 관점이 개인의 자유의지 행사라는 측면에서 이해되면서 일체의 신학적 고려와 윤리적인 논의의 정당성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 하겠다. 또한 감성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자살자에 대하여 공과(功過)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모든 허물은 덮어버리고 동정적인 시각만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어서 우려된다.
4. 자살에 대한 예방과 대책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에 대한 예방과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 차원에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메켄지 선교사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인 자살의 주요 원인이 되는 우울증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인 주요한 생활 사건, 미세한 생활 사건, 사회적 지지 결여 중에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은 사회적 지지 결여 부분이다. 교회가 나서서 심리적, 영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지체들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건강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심방 오신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면서 던진 ‘참 힘들겠다’는 말 한마디에 펑펑 울고 신앙을 다잡고 기도로 고비를 극복했다는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살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본인 책임이지만 개인 신앙의 차원을 떠나 사회적인 문제 즉 교회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때이다.
또한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교육도 중요하다 하겠다. 오늘날 경제 중심, 서열 중심, 성공 중심의 가치가 자리잡힌 사회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저 “당신은 사람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입에 발린 멘트가 아니라 목회자가 말씀을 통해 그 어떤 가치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가르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낙태반대운동, 입양운동 등 실제적인 생명보존에 연관된 활동을 함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2007년 『목회와 신학』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자살 충동과 관련해서 목회자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해 18.8%만이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는데, 도움받지 못한 이유로 17%가 ‘부끄러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소문 날 것 같아서’ 라는 응답도 5.6%를 차지했다. 이는 교인들이 상담가로서 목회자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이러한 고백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양쪽 모두 어색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적 연대 가운데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 볼만하다. 지역 교회들이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하며 연대하는 상담소를 운영하여 언제든지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상담받도록 하는 것이다.
Ⅳ. 결 론
본인은 메켄지 선교사의 죽음을 분석하였고 그와 연계된 목회 신학적 의미를 고찰하여 보았다. 메켄지 선교사는 조선에 대한 사랑과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입국하여 2년 여의 짧은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권총자살로 일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자살은 의도성과 계획성을 가진 자살이 아니라 육신의 질병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상태에서 이어진 우울증으로 인한 우발적 자살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살이 명백한 범죄이긴 하지만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까지 윤리적 비판을 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암(癌)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자살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을 마냥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물론 성경이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십계명의 6계명에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는 규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자살은 살인죄와 같이 무서운 범죄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살이 큰 범죄라는 사실과 함께 생명의 존귀함을 끊임없이 가르쳐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방과 대책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살은 교회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연약한 자들에게 사회적 지지층이 되어 주어야 하며 지역 상담소를 운영하여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2009년 신학대학원 수업 리포트
5 교회 문턱을 높여야 한다. 관리자 21.11.30
연일 우리 조국교회는 뭇매를 맞는다. 이제는 교회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동정해 줄 사람들도 많지 않아 보인다. 드라마에서 기독교인의 캐릭터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해도 '실제로 너희들은 그렇지 않느냐'는 냉랭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 지난 날에는 기독교인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이라 여김받고 자랑거리가 되었으나 이제는 마치 파렴치범이라도 되는듯 부끄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누가 이렇게 주님께서 세우신 이 고귀한 교회를 망쳐버렸는가? 교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지만 특별히 목사들이 이 책임을 져야 한다. 목사들이 대형화, 목회 성공에 눈이 멀어서 사역 확장에만 매달린 결과가 이 모양이다. 사람들 끌어 모으느라 교회 문턱을 너무 낮추어 버렸다.
예수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나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 심지어 당대 부자 엘리트 청년조차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부담을 주셔서 돌아서게 만드셨다. 아마 이 시대 목사들이었다면 돈도 있고 열심도 있는 청년이니 무조건 오케이였을 것이다.
물론 교회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초대교회 문헌을 보면 새신자가 세례를 받고 정회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보통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세례라는 것도 지금 우리처럼 1-2주 교육받고 바로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3년을 꼬박 훈련받고 검증이 되어야 세례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인이라고 무슨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로마정부에 탄압을 받는 처지였는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꾸역꾸역 교회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공짜를 좋아해도 공짜는 별로 가치없게 여긴다. 내가 돈 주고 산 책은 귀하게 여겨도, 남이 읽어보라고 그냥 준 책은 잘 읽지도 않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은 팔다남은 떨이 제품 취급을 받고 있다.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러야 했던 구원의 복음을 마치 장날표 싸구려처럼 여기고 헤프게 취급한다.
새신자들을 VIP라 칭하면서 제발 교회 한번만 와달라고 읍소한다. 그들을 위해 예배까지도 인간을 위한 공연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인데 손님인 우리가 주인을 밀어내고 우리 맘대로 예배를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고려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부담을 안 느끼고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할까' 하며 사람들을 의식하며 예배를 드리려 한다.
이런 마당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다, 교회 문턱이 높다고 하며 더욱 세상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교회가 되려고 안달을 한다. 그럴 생각이면 교회 문을 닫고 그냥 문화센터를 만드는게 낫다. 지난 20여년간 교회는 하향곡선을 그리는동안에도 천주교는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어디 그들이 예배가 딱딱하고 고루하다며 우리처럼 열린예배를 추구한 적이 있던가? 여전히 그들이 드리는 미사는 예전과 다를바가 없다. 그럼에도 천주교회로 사람들은 몰리는데 반해, 문턱을 낮출때로 낮춘 교회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교회와 복음을 싸구려로 만든 목사들로 인해 화가 난다.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말씀에서 벗어난 자를 권징하여야 한다. 그저 주일 한 번만 교회 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고 앉아 있을텐가. 지금 한국 기독교인이 800만이라고 하는데 더 몸집을 키울때가 아니라 제대로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지 않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려 그 숫자를 줄여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수많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바벨탑을 건설해서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는데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세상 나라를 대항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면서 달랑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신다. 미디안 군대와 대항하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용사는 단지 기드온과 삼백용사 밖에 없었다. 숫자로 세상과 겨뤄보겠다는 태도는 세상 나라의 논리이다. 교회여, 제발 문턱을 높여라.
2013. 5. 9.
4 감상평 관리자 21.11.30
MBC 예능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는 <아빠 어디가>와 더불어 죽어가던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되살린 일등공신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년 4월 첫 방송 이래로 군대를 경험한 예비역은 물론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군대 내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들을 군에 보냈거나 곧 보낼 어머니들과 오빠나 남동생·남자친구를 둔 젊은 여성들에게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어쩌면 '군대'라는 소재는 우리 국민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어 있는 생활밀착형 소재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를 통해 군대의 일상적인 모습이 안방에까지 전달될 때에 군 생활은 저런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시청자들이 은연중 하게 된다. 사실 세월이 흐르면서 군대의 여러 면들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지금의 군대 문화도 바뀌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까지도 예능의 한 부분으로 가볍게 처리되고 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한 점도 없지 않다.
먼저는 군기라는 이름으로 인권에 대한 경시가 적지 않게 드러나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1월 5일 방송분을 보자면 연예인 병사들과 갓 훈련소를 나온 일반병이 GOP 근무를 끝내고 자대에 배치되는 장면이 나온다. 전입 병사들이 오면 기존의 병사들은 군기를 잡을 요량으로 굉장히 까다롭게 굴고 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분대원들 소개가 끝난 뒤 분대장이 전입 온 병사들에게 관물대를 정리하라고 지시한다. 그 때 전입 온 이병이 쏜살처럼 일어나 짐을 정리하려고 하자 곧바로 분대장이 "누가 기상하래! 앉아! 누가 기상하래!" 하고 고압적으로 말하면서 날카롭게 쏘아본다. 주눅이 든 이병은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 이병은 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다만 분대장은 그 지시 이후 이어서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런 상황이었으면 그냥 '앉아서 내 말 다 듣고 행동하라'고 하면 될 일이다. 눈을 부라리고 "누가 기상하래!" 하고 겁박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이병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일도 아니었다.
또한 <진짜 사나이>를 보면 교관이나 선임들이 한 두 번 가르쳐주고는 처음 따라하는 연예인 병사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얼차려를 주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촬영하는 일주일 내에 해야 할 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각 부대에서 요구하는 미션들을 빠르게 습득하고 따라해야 하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단번에 못 해낸다고 '정신 못 차린다' '기합이 빠졌다'고 얼차려를 주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어쩌면 군대의 이런 풍경은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시청자 중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군대에서의 인권에 대한 가치를 낮춰 잡고 있기 때문에 상관으로부터 부당한 욕을 먹어도 군대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여기는 것이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자. 사실은 군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들로 인한 구타와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무수히 자행되고 있다. 단지 후임을 노예처럼 길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군기라는 용어가 남용되고 있을 뿐이다. <진짜 사나이>에서도 군기와 인권경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군대니까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처럼 여기고 방송으로 내 보내는 장면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2014년 1월 5일 방송에서는 야외 전술훈련 장면이 공개되었다. 적군이 점령하고 있는 고지를 아군이 탈환하는 훈련인데 방송출연자들도 나뉘어 창과 방패의 대결을 벌인 것이다. 서로 총을 겨누고 죽이고 죽는 전투 장면이 그대로 안방에 전달되었는데 실제 총탄과 포탄이 작렬하는 훈련 현장이 전쟁이라는 이미지보다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게임장을 연상케 했다.
물론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예능이기 때문에 군대에서의 훈련을 심각하게 다룰 이유는 없으나 전쟁을 대비한 가상 훈련을 마치 전쟁놀이처럼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은 강토가 망가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매우 참혹하고 비극적인 일인데 이런 식으로 다루어진다면 그것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게임하듯이 전쟁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훈련에 참가한 방송출연자들도 "내가 OO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라든지 "내 목적은 일단 OOO를 죽여야 된다... 내가 OOO 있는 위치 파악해서 죽여버렸어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생명에 대한 가치를 절하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낸 점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남성성에 대한 왜곡된 표출과 여성 비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패턴 중 하나는 힘들거나 때로는 무료한 군대 일상 속에 갑자기 걸그룹이 연병장에 나타나 병사들로 하여금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토록 군기를 강조하는 군대에서도 걸그룹이 나타났을 때 병사들이 광란에 빠지는 모습에는 침묵한다. 절도와 질서는 이미 안중에 없고 걸그룹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고 모두들 무대 앞으로 몰려가 아우성을 친다. 무대에 선 걸그룹 멤버들은 섹시함을 극대화 한 모습을 연출하고 방송출연자들을 비롯한 병사들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거나 환호한다.
이때 여성은 인격체가 아닌 남성에 의한 하나의 성의 수단이 된다. 이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부지불식간에 군대에서 억눌린 스트레스는 성적인 수단으로 푸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질까봐 두렵다. 또한 온 가족이 둘러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같은 모습을 되풀이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앞으로 <진짜 사나이>가 이같은 점들을 개선하여 좀 더 유익한 방송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4. 1. 8.
3 우리 사회에서 노아시대를 보다. 관리자 21.11.30
작년 한 해를 돌아보자면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절규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매일유업 사태로 촉발된 갑의 횡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 계급이 얼마나 ‘슈퍼 갑’들에 의해 착취를 당하고 있었는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지더니 한 해가 다 저물도록 해소는커녕 더 많은 의혹만 안겨준 채 해를 넘기고 말았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바랐건만 대통령은 남의 집 불구경 하듯이 자기와 무관한 것처럼 모른 채하고 오히려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는 검찰총장을 내쫓고, 국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으려 애를 썼다. 정의가 짓밟히고 불의가 득세하는 현실에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 시위로 맞섰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연말에는 KTX 자회사 설립과 관련하여 민영화 논란이 불거지며 코레일의 파업 사태를 맞이함으로 정부와 철도 노조 간의 갈등이 격화 되었다. 노조의 거듭되는 대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철도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대량 직위해제 및 노조간부 검거에만 열을 올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시민의 발을 묶고 있는 철도 노조의 파업에 시민들이 크게 불만을 제기했을 텐데 철도 민영화 문제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시민들이 노조를 지지함으로 파업에 동력을 얻었다.
철도 민영화에 대하여 정부에서는 한결같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철도 노조는 물론 상당수 국민들도 민영화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코레일의 적자 해소를 위한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해 볼 일이지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취지 자체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고, 알짜배기 노선을 자회사에게 안겨주면서 모기업인 코레일의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에 어떤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공공부문 민영화를 반대한다는 의견이 60%가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음에도 자꾸 물밑에서 민영화 작업을 은밀히 진행하는 정부의 행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취업난에 몸부림치던 20대 청춘들은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통해 그동안 사회가 뒷걸음질 치고 있음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자기 살 길만 찾아가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했다. 취업할 곳을 제 때 구하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에서도, 뭔가 어그러지고 퇴행하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젊은이들의 마음은 안녕하지 못하다.
2013년 마지막 날에는 ‘박근혜 사퇴’를 주장하던 한 남성이 분신하여 중태에 빠졌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정의가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대한 분노이자 저항이었다.
갑의 횡포와 을의 눈물, 국가 기관 대선 개입에 침묵하는 대통령, 서울 광장을 메우는 촛불,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몸에 불을 붙여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남자. 이 모든 사건에서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좌우하는 세상의 실체를 보게 된다. 1%의 이익을 위해 99%가 피눈물을 흘리고 고통받아야 하는 세상... 이것은 마치 창세기 6장의 노아 홍수 직전의 세상을 보는 듯하다.
그 때의 세상은 어떠했던가? 창세기 6:11-12절이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포악함”(하마스)이라는 말은 폭력의 사용을 의미하지만 강자에 의한 약자의 착취나 부요한 자에 의한 가난한 자의 착취, 교활한 자에 의한 순진한 자의 이용과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WBC 창세기, 339.).
노아 홍수 당시 사회에 죄악이 가득했다는 것을 단지 개인적인 방종이나 일탈이 심했다는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권력자들이 자기가 가진 힘으로 약자들을 억누르고 수탈하고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사기꾼들이 득세해서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해 먹는 나쁜 사회였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힘있는 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등쳐먹는 세상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신 세상은 힘의 원리가 좌우하고 거짓이 횡행한 곳이 아니었다. 삼위일체의 모습이 오롯이 구현되어 사랑과 희생과 섬김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세상을 바랐다. 죄로 인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물거품이 되자 하나님의 최후 대응방식은 홍수 심판이었다.
노아 홍수 직전의 사회와 우리 사회가 뭐가 다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안녕하지 못한 사회, 샬롬이 사라진 사회 속에 미래는 있는가?
2014. 1. 3.
2 손양원 목사님이 던져준 과제 관리자 21.11.30
성탄절 밤에 손양원 목사님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KBS 1TV를 통해 방영되었다. 예전에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독교 관련 프로그램도 곧잘 편성하더니 어느샌가 성탄절이라고 딱히 기독교와 연관된 기획물이라고는 별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성탄절에 주로 미담 사례를 발굴하여 취재하는 대상도 가톨릭과 관계된 사람들이 많다. 각 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TV 프로그램 편성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던 차에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지상파 방송을 통해 방영된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다. 손양원 목사님은 적어도 조국교회가 세상에 자랑할만한 몇 안 되는 역사적 인물이다. 사실 그의 삶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로 기획할만한 가치도 충분했다.
그의 행적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TV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한 편에서는 조국교회에 이런 분이 계셨다는데 대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다른 마음 한 편에서는 '너는 저렇게 살 수 있냐?'는 물음이 들면서 보는 내내 불편했다.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나환자들을 돌보다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어 5년 여의 옥고를 치뤄야 했고, 광복 이후 좌,우익의 갈등 속에 여순 사건으로 자기 두 아들을 잃어야 했으며, 그런 참극 속에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 양아들로 삼았으니 실로 이보다 한 사람 일생에 더 드라마틱한 일이 어디 있으랴.
지금에야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들이 손양원 목사를 칭송하고 우러러보지만 과연 현실에서 그런 일을 직접 겪는다면 그분처럼 행동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농촌에 가서 목회하라고 해도 가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한술 더 떠서 피고름 가득찬 한센병 환자촌에 가서 사역하라면 누가 갈까? 이 한 가지만 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신사참배 문제를 보자면 지금에야 신사참배 했던 목사들을 잘못된 처사였다고 비난하지만 당시에는 대다수 목사들이 적극적이었든 소극적이었든 신사참배를 했었다. 처음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감옥에 갔던 목사들 중에서도 나중에 교회에서 쫓겨난 처자식들이 굶고 있고, 비참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머금고 자기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변절한 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한 목사는 그야말로 주를 위해 자기뿐만 아니라 처자식까지도 버려야 했던 대단한 신앙을 보여준 자들이다. 손양원 목사 역시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되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굉장히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나 하나 고생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감내할 만하다. 그러나 나로 인해 가족 모두가 고통당하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면 여기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것은 손양원 목사 일생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손목사는 원수를 용서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고 아들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았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일,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일 이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 아들을 둘이나 잃어버린 상황에서 살인자를 양자로 삼은 것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이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성령의 능력으로 미루면서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라고 상황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삶을 보면서 나는 어디쯤 와 있는지 되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느만큼 할 수 있을까? 그는 십자가를 져야할 순간에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십자가를 졌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빠져나갔건만 그는 끝까지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역사는 당대에 호의호식하면서 권력의 그림자를 좇아 다닌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진 사람들에 대해 높이 평가를 한다. 나도 손양원 목사처럼 살 수 있겠는가? 여전히 우물쭈물 하고 확신이 없는 나 자신을 보며 고뇌한다. 이렇게 목회할 거냐고 몇 번이고 되물으면서...
2013. 12. 27.
1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관리자 21.11.30
제가 어렸을 때에 여름성경학교를 열면 아이들이 엄청 많이 몰려왔습니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가 어른 성도 3백여 명 정도였던 교회인데 제 기억으로는 유치부 포함해서 주일학생들이 2백명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하면 동네 아이들이 한 번쯤은 다녀갈 정도로 많이 모였고, 그 때는 4-5일씩 하면서 새벽기도회도 진행했습니다. 저는 여름성경학교를 가면 지겹도록 재미없는 율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별로 흥미는 없지만 개근상을 받으려고 새벽부터 열심히 다녔던 기억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한국교회 성장의 정점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교회는 하향세로 돌아섰는데 그간 말로만 들었지 체감하지 못하다가 최근 들면서 서서히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일단 출산율 저하가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고, 그나마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아이라도 무늬만 교인이지 신앙이 없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10년을 캠퍼스 사역을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는 갈수록 신앙의 기초가 없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래서 이들을 신앙교육 시키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은 기본이라는 것을 깔고 신앙교육을 시켰다면 지금은 '주일 예배는 빠지지말고 꼭 가야한다' 이런 기초적인 것을 강조해야 할 수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직은 30대에서 60대 사이의 신앙인들이 한국교회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30년, 지금부터 한 세대가 흘러가면 한국교회는 반토막 나고 말 것입니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2050년 한국교회 교인수는 400-500만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 숫자도 지금 기존의 30, 40대 신자들이 2050년에 살아있기 때문에 그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지 우리 다음 세대들의 경우 신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주일학생들은 저희 집 딸 셋이 전부입니다. 아직 다른 친구들이 없이 우리 애들끼리만 모이는 것이 왠지 고립되고 소외된 것 같아 조금은 맘이 아픕니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이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에 주변에서 같은 신앙인으로 힘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암울한 미래 때문입니다. 지나버린 한국교회의 부흥기를 우리 자녀들에게 흘러간 이야기처럼 넋두리하는 시대가 오는 것일까요?
교회의 쇠락이 안타깝긴 하여도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을 삼을 것은 그간 한국교회를 뒤덮고 있던 거품이 꺼지면서 쭉정이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고 좀 더 신실한 자들이 교회의 그루터기로 남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여러 모로 걱정이 많아집니다.
2013.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