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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딸 둘을 타지로 내보내면서 관리자 25.02.11
하나님의 은혜와 살림교회 식구들의 격려 속에 저희 가정에 큰딸 가람이와 둘째 딸 나래가 각각 대학과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첫 대입을 치른 것이었고, 고입도 일반고가 아닌 자사고에 보내다 보니 진학과 관련된 모르는 내용이 많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작년 한 해를 보내었습니다. 여러분도 학부모로 나중에 다 겪게 될 일이라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그간의 과정을 짧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람이는 어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하여 막연하게 미술이나 애니메이션, 시각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체능 쪽은 돈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왔습니다. 고1 때 담임 선생님이 미술 쪽으로 가려면 지금 당장 준비해도 늦다고 재촉해서 미술학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학원비에 대한 부담과 과연 미술 관련된 전공을 선택하는 게 옳은 선택일까 의문이 들어서 일단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그렇다고 가람이가 아주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라서 고3이 되고 보니 진로 선택이 애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입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으니 실기를 보는 미술 전공을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기를 보지 않고 내신성적만 보는 학교도 있었지만 그런 학교는 높은 등급을 요구해서 지원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가람이가 미술 관련 학과 외에 다른 학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억지로 가고 싶지 않은 학과에 지원하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순수 미술 쪽은 기초가 없으니 안 된다고 보고 가람이가 원하는 문화컨텐츠학과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고3 학부모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각 학교들의 입시요강을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학교별로 중요하게 반영하는 과목이 다르고, 교과 외에 다양한 활동도 요구하고 있어서 ‘입시 컨설팅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구나!’ 라고 이해하게 됐습니다(입시 컨설팅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입시생뿐만 아니라 부모도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들이 원하는 바를 고1 때부터 미리 알고 있어야 그에 맞게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웬만한 정보력이 없으면 자식 대학 보내는 것도 힘들겠다 싶습니다. 입시를 코앞에 두고서야 생활기록부에 선생님들이 써준 평가가 대학 들어가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당사자나 부모나 이렇게 입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로 아이는 고3 생활을 했는데, 저희 부부는 예전부터 막연하게 ‘가람이가 한동대 갔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입시 미술을 하지 않은 가람이가 미술 계통의 학과에 진학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동대는 전원 자율전공으로 신입생을 뽑기 때문에 실기 없이 들어갈 수 있고, 입학해서 콘텐츠융합디자인 전공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 부부가 볼 때는 최적의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가람이 실력으로는 들어가기 만만치 않아 보여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최대 6곳에 지원할 수 있는 수시모집에서 하나는 일반 전형으로, 또 하나는 사회기여자 전형(다자녀)으로 한동대에 지원했습니다.
아내는 일단 뭐 하나에 꽂히면 엄청나게 파고드는 스타일인데, 입시가 코앞에 닥치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아내는 가람이가 갈만한 학교의 입시전형을 다 분석해 보고 지원을 한 것입니다. 저는 뭘 모르니까 아내가 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한동대에 두 군데나 지원을 했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분석해보더니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가람이가 면접 보러 한동대에 갈 때 제가 따라갔는데 저는 마냥 딸이 어리숙하게 보여서 면접을 잘 볼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예상 질문과 답을 계속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답을 잘해서 ‘면접을 망치진 않겠구나’ 여겼고, 면접을 보고 난 뒤에 가람이가 대답을 잘한 것 같다고 하여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한동대가 아니면 집 가까운 강남대에 합격하기를 기대했는데 한동대는 예비 앞순위로, 강남대는 1차에 합격했고, 당연히 한동대에 등록을 했습니다.
사실 수도권 대학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한동대 명성이 예전 같지 않아서 가람이가 합격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시절 내내 본인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진로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세월만 보낸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저희 가정을 긍휼히 여기셔서 소원을 이루어주셨다고 믿습니다. 저희 부부가 가람이가 꼭 한동대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신앙 좋은 친구, 선배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이다 보니 또래 친구도 없이 초, 중, 고 시절을 보낸 가람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대학만큼은 신앙적인 분위기의 학교, 신앙인들이 모인 곳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 바람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둘째 딸 나래를 안산에 있는 동산고까지 보내게 된 이유도 비슷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식 좋은 대학 보내려고 일부러 자사고를 보낸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좋은 대학을 원했다면 집 가까운 고등학교를 보내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나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가람이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보냈다면 내신을 잘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즐비한 동산고에서는 중간쯤 따라가는 것도 벅찰 것입니다. 부모된 저로서는 집 가까이에 있는 학교를 보내는 것이 신경도 덜 쓰이고, 교육비도 별로 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학교로 보낸 이유는 그곳 역시 신앙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안산동산고등학교는 안산동산교회에서 만든 학교인데 공교육임에도 신앙적인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학교입니다. 매일 아침 학급 경건회를 가지고, 주중에 채플 시간이 있어서 전교생 모두 모여 경건회를 가진다고 합니다. 자사고 특성상 학생들이 여러 지역에서 찾아오기 때문에 학교에 기숙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기독교인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마 자율형 사립고라서 학교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부여되어서 그렇게 하나 봅니다. 그래도 경쟁이 치열해서 기숙사 입사를 위한 면접까지 보는데 다행히 이번에 나래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목사님들 중에 자녀를 동산고에 보낸 분들이 많아서 물어보면 하나 같이 만족을 표하면서 ‘꼭 보내라’고 추천을 하십니다. 저는 이런 신앙적인 부분 때문에 나래를 동산고로 보냈습니다. 가람이를 집 가까운 고등학교 보내면서 ‘교회에는 또래 친구가 없으니 학교에서라도 믿음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가람이는 그런 친구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는 필수적인 수업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제각각 알아서 하라고 방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아이의 사교육을 책임지고 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요즘은 숙제도 안 내줍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어느 정도 공부하도록 잡아주는 것도 필요한데, 요즘은 워낙 학생 인권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학부모의 간섭이 많으니까 학교에서도 굳이 학생들을 붙들어 놓고 공부하도록 지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면학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동산고를 택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아이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속에 위축되고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나래의 진학을 앞두고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는데, 안산 동산고로 보내고 싶다했더니 그 학교는 250점 만점에 커트라인이 245점이라고 하면서 나래 성적으로는 간당간당하다고 했습니다. 나래는 다자녀 전형으로 지원해서 그 커트라인과는 상관없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 수준으로는 하위권이 예상됩니다. 주로 그 학교 들어오는 아이들은 이미 중학교 다니면서 사교육으로 무장한 아이들인데, 사교육이라고는 우정 집사님이 주1회 가르쳐 주시는 수학과외 밖에 없는 나래가 경쟁이 될까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나래에게 ‘거기서 못해도 된다.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하든지 비교하지 말고 너의 페이스대로 해라. 정 못하겠으면 다시 우리 동네로 전학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저도 학부모인지라 나래가 거기 가서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지만 거기서 믿음의 친구들을 사귀고, 신앙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가람이도 하나님 은혜로 대학 갔는데, 나래도 그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사고라서 학비가 가람이 대학등록금보다 비싸서 놀랐는데,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가정의 두 아이를 집 밖으로 떠나 보내야 해서 섭섭하기도 한데, 어디서든 주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근래에 가람이 나래의 합격을 축하하면서 학비에 보태라고 축하금을 보내주신 가정이 있었고,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성도 중에 가람이 나래 학비라고 지정헌금을 보내주신 분이 있습니다. 목사의 가정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의 마음을 보내주신 성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제 저희는 초, 중, 고, 대 모든 학교에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보고, 듣고,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이 저희를 뒤따라오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일단 제가 경험한 바로는 진학의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처럼 대입을 앞두고서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던 가정에도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아무 노력 없이 잘 되기를 기대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되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부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세상의 가르치는 바대로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라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2023년 10월 8일 최종인 형제 정회원서약식이 있었습니다. 최종인 형제의 간증을 함께 나눕니다. 관리자 23.10.08
오늘 살림교회 최종인 형제의 정회원 서약식이 있었습니다.
서약식 후 함께 나누었던 간증을 공유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어릴적부터 고신과 그리고 SFC의 신앙 안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릴 적 저의 꿈은 목회자였고, 신학을 전공하기 전에 철학을 먼저 공부해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강남대 철학과에 진학하여 거기서 SFC활동도 같이 하였습니다.
군 전역 이후, 목회보다도 평신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경남 산청에 있는 민들레 공동체로 내려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전란으로 인해 황폐해진 난민 지역을 복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기술 인프라 복원 선교를 준비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다시 수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권유에 따라 수원**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당시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 특정 정치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설교와, 정치적인 의도로 청년들을 동원하는 교회를 보고 교회에 대해 환멸하여 완전히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교부 키프리아누스가 “교회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라고 이야기 하였으나, 저는 당시 어머니 된 교회의 불륜 현장을 목도하였다고 비판하며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때에 교회 밖에도 그리스도인임을 이야기하는 자들을 많이 만나며 교류했습니다. 통칭 ‘가나안 성도’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SNS와 그리고 오프라인 곳곳에 마치 고립된 은자들처럼 퍼져 있었습니다.
교회를 떠나고 7년간 저는 그들과 교류하면서 교회를 떠난 자들이 한국교회의 죄악에 대해 비판하는 것들을 듣고 거기에 참여하였습니다. SFC시절 배웠던 개혁신학에서 벗어나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하며 성서비평을 받아들이고 복음보다도 인권과 평등사상, 그리고 사회 정의에 대해 더욱 무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는 관심이 없던 한국교회를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교회의 죄악을 새겨놓은 커다란 기둥을 제 두 눈에 박아넣었습니다.
그 때 당시 교류하였던 가나안 성도들 중에 상당수는 처음에는 잘못된 조국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복음 그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며 이윽고 결국엔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며 신앙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교회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그제서야 제 두 눈에 박아넣었던 기둥에 새긴 죄악들 역시 제 몸뚱아리에 그대로 적혀있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왜 제가 다시 교회의 품에 오게 된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왜 저들과 똑같이 저의 신앙을 버리고 배교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면 끝까지 제 손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변 가나안 성도들의 배교를 보며 나 또한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있었을 때에 연락주신 한성훈 목사님과, 제 삶 가운데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 한국교회를 정죄하던 교만한 비판자의 삶을 살았던 저를 받아주신 살림교회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출석한 지 6개월이 되어 정회원 서약을 함에 있어, 두 번 다시는 어머니 되신 교회의 품을 떠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과 치리함에 순종하기를 서약합니다. 감사합니다.
- 최종인